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 (문단 편집) == 살해 == 1989년 11월 3일, 하시모토 사토루(端本悟)[* [[와세다대학]] 재학 중 [[옴진리교]]에 심취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옴진리교에 접근했다가 본인도 해당 사이비 종교에 빠져 범죄자로 전락하였다.], [[의사]]였던 나카가와 토모마사(中川智正), 옴진리교의 수석 [[과학자]] 무라이 히데오(村井秀夫)[* 최종 학력은 이학 석사. 이 자는 1995년 4월 23일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 조직원인 서유행(徐裕行)에게 [[무라이 히데오 척살 사건|칼로 살해당했다.]] 사실상 인과응보인 셈. 그리고 이 사건은 1985년 [[도요타상사 사건]]과 함께 일본 내에서 범죄자의 인권 문제와 [[방관자 효과]]에 대한 예시로 회자되고 있다.], 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岡崎一明|오카사키 카즈아키(岡崎一明)]] 등 옴진리교 간부 6명은 [[요코하마시]]의 한 전철역에서 사카모토가 귀가할 때 납치해 [[염화 칼륨]]을 주사해 죽이려 했지만 이 날은 공휴일인 [[문화의 날(일본)|문화의 날]]이었고 사카모토의 사무소도 당연히 휴일이었다. 결국 교주 아사하라의 지시에 따라 11월 4일 새벽 3시 경 사카모토의 집에 침입했다. 그들은 사카모토와 그의 아내를 구타한 뒤 [[염화 칼륨]]을 주사하였다. 그의 아내는 [[즉사|주사로 사망했으나]] 사카모토는 곧바로 죽지 않아 결국 [[교살|목졸라 죽였다]]. 한 살배기 아들 역시 염화 칼륨[* 염화칼륨은 심장 수술, [[약물주사형]] 등에서 심정지액으로 쓰인다.]을 주사한 뒤 천으로 얼굴을 덮어 질식사시켰다. 범인들은 3명의 시신을 [[드럼통]]에 집어넣은 뒤 세 곳의 외딴 시골 지역에 분산해서 암매장하였다. 사카모토 츠츠미는 [[니가타현]]에, 아내 사토코는 [[도야마현]]에, 타츠히코는 [[나가노현]]에 묻었다. 만일 시신이 발견되더라도 경찰이 이 3건의 암매장을 서로 연관짓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